사회학2016. 9. 11. 18:57


그동안 바빴고, 앞으로도 조금 많이 바쁠 것 같아서 이 시리즈물의 진로가 반투명(불투명하진 않다)해졌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꼭 써나가겠다고 약속한다. 꼭 고3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가 아니라 누구나 언제나 볼 수 있는 좋은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한다.


이 블로그에 사회학과 관련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아마 다음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데, 사회학과가 도움이 될까요?"


10년 뒤의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고, 20년 뒤의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모른다. 이 말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이야기고, 심지어 언젠가는 이 글을 부끄러워하며 삭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써보겠으니, 너무 믿지 않길 바란다. 블로그에서조차 이게 단지 '개인적인 그리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생각이에요'라고 밝히며 쓰고 있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정보량도 넘치고 뭐든지 기록으로 남는 사회다 보니 조심스럽다.

(이 글을 보신 사회학 교수, 대학원생, 선배 및 동학들은 이 점 고려하시어 비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올 수 없을 것이고 질문의 의미를 모른다면 헛된 답을 내놓을 뿐이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 이런 마음을 갖기 쉬운 것이 고3이고, 대학생들이다. 어떤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을진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런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위의 문장들은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치를 갖는지 잘 모르겠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할 때, 본인이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란 뭐길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할 때 문제는 뭐고 해결은 뭘까? 이런 개념항들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실 힘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나도 안다. 아직 공부한 게 없는데, 경험한 게 없는데 그걸 벌써 정확히 알면 왜 대학교에 지원하고 있겠나. 벌써 사회를 바꾸러 뛰쳐나갔겠지.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데, 사회학과가 도움이 될까요?" 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여러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꿈꾸듯이 사회학에서 배운 내용을 통해 직접 사회를 개량한다는 생각이 있고, 사회학을 통해 일정한 방향성을 수립하여 그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사회학의 내용을 직접 이용할 순 없어도 조금 도움 받을 수 있다)일 수도 있다. 전자에서는 사회학이 사회공학적 기술이 되고, 후자에서는 그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기초학문이 된다.


i) 사회학을 사회공학으로 생각한다면

사회학을 아직 배우지 않은 단계에서는 사회학에 대해 이런 기대를 하기 쉽다. 비단 사회학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경영자가 되고 싶어서 경영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정치외교학을 배우기도 하는데, 배워보면 알겠지만 경영자 되기/정치인 되기랑 경영학 공부하기/정치학 공부하기는 정말 다른 일이다. 학문은 어디까지나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학문을 비하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학문에게는 학문 장에서의 일들이 있고 사회의 다른 영역에의 파급 효과는 어느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인데(동어반복이다), 멋진 베버, 뒤르켐의 책들에서처럼 인상적인 이야기를 팍팍 쏟아내는 쪽으로 공부하는 분들도 있고,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사회'의 실체를 그려내려고 분투하는 분들도 있고, 실제 사회 현장에 들어가서 땀흘려가며 참여관찰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이 모두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제 1의 목적은 학문에 있다. 사회 이론을 하시면서 뭔가 참신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해도 학문이라는 틀 내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학문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실증적인 연구나, 사회운동을 병행한 연구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회학은 기술(technology)은 아니다. 기초학문이냐 응용학문이냐 하면 기초학문에 들어가는 학문이다. 사회학을 어딘가에 직접 적용해서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토목공학자가 다리를 세우는 데 필요한 계산을 할 수 있고, 산업공학자가 공장의 배치를 연구해서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해 볼 수는 있는데, 사회학자의 연구 결과가 사회에 투입되는 건 그 정도까지 쉽지는 않다. 물론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건 실제 사회 현장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하는 몫이다.

사회학 '그 자체'를 '이용'해서 사회를 바꾸는 것은, 별로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ii) 사회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기

그러나 너무 절망하지 말라. 사회학을 경유하여 사회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위에서 사회학이 기초학문 분야라고 했는데, 기초학문의 역할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인간사회와 세계에 대한 상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초학문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응용 분야에서 유용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사회학이 사회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더라도, 사회를 개선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워 볼 만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은 우선 사회의 여러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대한 시각을 갖게 해주고, 사회학에서 중시하는 과학적인 사고 방식은 일반적인 문제 해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른 사회과학을 전공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첫번째, 사회학은 말 그대로 사회의 여러가지, 이것저것을 포괄하기 때문에 여러 관심사를 융합시키거나 즐겁게 발전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경제학, 정치학은 아무래도 경제와 정치 현상에 집중하고, 설령 그 현상을 벗어난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고 해도 학부생 단계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두번째, 사회학은 사회조사방법 그 자체를 중요시하고 하나의 세부분야로 갖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사회통계, 사회조사방법론 같은 수업) 학부 단계에서도 실제적인 연구를 해 볼 기회가 있다. 물론 정치학이나 심리학 전공자들도 이런 측면에서 충분히 훈련받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회학은 사회를 과학적으로 보는 좋은 연습이 된다.

다만 사회학을 통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관심 갖는 분야에서의 공부와 체험이 필요하다. 사회학이 다루고 있는 분야들(노년, 빈곤, 도시, 계층, 가족, 환경 등) 중에서 자신이 특수하게 참여하고 싶은 분야, 또는 사회학이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본인이 해 보고 싶은 일을 충분히 알아보고 그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때때로 사회학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부 관료가 되거나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행정학이나 경영학 지식이 당장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컴퓨터공학이나 기계공학, 도시공학 같은 걸 공부해야 실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실 사회학의 유용성에 대해 약간은 부정적이기도 하다. 막상 사회학을 통해 관심사를 발견하고 나면 정작 '기술적' 부분이 부족해서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환경 문제에 관심 있다면 사회학도 좋은 공부지만 환경에 관한 전문지식을 쌓는게 좋았을 수 있고, 사회적 경제 관련 사업에 참여하고 싶을 때 경영학이나 경제학에서 익힌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쓰다보니 국제기구에 관해 들은 말이 생각난다. 흔히 정치외교학, 국제학 같은 걸 공부해야 국제기구에서 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제 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되는 스킬은 전문지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개발학, 각종 공학이나 경제학, 회계 재무 등의 전문가들이 채용되는 것이지, 정치외교학 전공자가 들어갈 자리는 오히려 좁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돌아와서, 사회학을 통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으면 좋겠다. 사회학 그 자체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 막연하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심시티처럼 게임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사회에 한 사람이 포괄적으로 개입해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대통령쯤 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물론 한 명의 사람이 아주 큰 영향력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한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아 활동할 수 있는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전문화된 현대 사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분야를 선택하지 않고서 '사회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지 확실하진 않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 잠정적인 목표와 꿈이 있을 때 덜 헤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임시의 목표라도 가지지 않고 뛰어든다면,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사회라는 거대한 괴물같은 미로 앞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유독 사회학에 관심갖는 친구들이 이런 원대한 목표를 갖기 마련이고, 나도 그랬는데, 이건 '방향성'이지 구체적인 목표사항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구체적인 분야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본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데, 사회학과가 도움이 될까요?"

-> 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은 학문으로서의 경계 내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사회학 이론으로 막 세계를 바꾸고 이러는 건, 역사적 사례를 볼 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걸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오히려 사회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분야인지 확실히 정해서 그 길로 나아가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다양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족하지만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nanuns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