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역사2016. 4. 2. 18:47


전복과 반전의 순간
국내도서
저자 : 강헌
출판 : 돌베개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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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감상을 쓰려고 하니 막막하다. 텁텁한 기분이다. 다 읽었으되 다 읽지 못한 기분. 그 이유는 아마 이 책이 본래 강연 내용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연에서는 있었을 분위기를 풀어주는 도입부와 마무리해주는 종결부가 책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책 표지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다소 충격적인 방식(물론 예술 분야 서적에서는 전혀 충격적인 시도가 아닐테지만)으로 시작해서 끝내기 때문에 조금 허망할 수 있다.

읽기전에는 건축, 예술 분야 서적에서 간혹 보이던 무자비한 줄글과 거의 없는 여백의 편집 방식을 보고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책인가 겁먹었다. 그러나 내 눈길은 뒷표지에 써진 <사의 찬미>에서 멈추었다. 내 소년 시절에 충격을 주고 지나갔던 음악. 100년 전의 사람들과 어떤 묘한 죽음의 유대 같은 걸 느끼며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듣곤 했었다. 이런 걸 소재로 다루는 책이라면, 역시 읽어야했다. 물론 재즈와 로큰롤, 베토벤과 모짜르트 같은 소재도 항상 관심을 가져왔기에 흥미를 끌었다.

이 책은 음악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음악사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역사' 카테고리에 이 감상을 쓰고 있다. 음악의 내적 원리도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음악 자체를 넘어선 시대적 배경(정치/사회/경제적 조건)과 음악가 인물의 문제를 다룬다. 바로 사회학자들이 좋아할 만한 문제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저자는 이 표현에 반대할 것이다. 왜? 한국과 미국, 서부 유럽의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음악사적 전환의 순간을 가지고 '동서고금'을 대표하기를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개 골라본다면- 하는 심정으로 네 가지 소재쌍을 고르지 않았을까) 소재 선정이 인상적이다.

재즈는 전에 <재즈입문>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고 스탠다드를 조금 들어봤기에 약간의 지식이 있었지만, 하나도 모르던 로큰롤과의 연계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마침 <음악의 원리> 원격강좌를 듣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모짜르트와 베트벤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졌다. 사회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저자가 시도하는 분석 방식과 저자가 채택한 관점은 어찌보면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짜르트는 아직 절대왕정을 중심으로 한 귀족 사회에서 '반항'을 시도했고, 베토벤은 공화주의에 힘입어 스스로의 음악을 펼치는 데 어쨌거나 성공했다 - 약간은 끼워맞추기 식으로 세운 명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삶을 상세히 추적하면서 공부했을 저자의 주장이니 토를 달지는 말아야겠다. 

우리나라 현대음악사를 배우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사실 70년대, 80년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아서 당시의 음악에 관심이 많아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때 음악을 좋아하는사람들이라면 신중현, 한대수 같은 이름들을 자연스럽게 익혔겠지만 그들의 음악을 부러 찾아듣지 않으면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는 오늘날. 아이돌 음악 일색인 음악프로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대망의 <사의 찬미>에 대하여는 사실 내가 전에 알던 것보다 훨씬 새로운 내용들을 알게 된 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그저 <사의 찬미>가 다루어진 책을 이렇게 만나 반가울 뿐이었다.

애초에 저술을 목표로 시작된 내용이 아니기에 책은 조금 산만하기도 했지만 내공 없이 펼칠 수 있는 '썰'은 아니었다. 아마 저자는 스스로가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으리라. 서울대 국문과 학부와 음악학과 대학원을 나온 이력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음악사'라는 키워드로 책을 찾아보면 대체로 근엄하고 딱딱한 내용일텐데, 이런 '대중적인' 음악사 책을 읽고 나니 확실히 '교양'의 시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꼭 학계에서 정립된 엄격한 명제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큰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오고, 도서관에 와서 내가 읽을 수있다니. 무엇보다 어딘가에서는 이런 강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정확히는 '벙커1'인가 하는 곳).

전문화된 학문과 대중이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으로의 분화. 학문의 미래는 어떨까?


Posted by nanuns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