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역사2016. 3. 31. 19:36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국내도서
저자 : 김시덕
출판 : 메디치미디어 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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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이 또 최고조에 달해 있는 요즘이다. 그 갈등의 주된 원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문제가 한반도 내에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주변국들, 그리고 유엔의 국가들이 함께하며 대북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란 전세계적으로 시끄러운 동네같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갈등을 관망해 볼 것을 요청한다. 

비록 지금의 핵, 미사일 도발이 있기 전에 쓰여져서 출간된 책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저자는 한반도를 예전의 지정학적 가치에 대한 고려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기를 거부한다. 동북아를 중미 각축으로 장으로, 당장이라도 평화가 깨질 수 있는 위험한 장소로 '오바'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일, 중, 러가 더 이상 해양/대륙 진출의 교두보로서 한반도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동, 남중국해 해상 분쟁이 격화되면서 한반도의 위기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코소보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평화롭게 위기관리되고 있는 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내세울 수 있는 건 저자가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동북아는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이고, 플레이어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시각에서 이렇게 쓴 것 같다)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바꿔놓은 사건으로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임진왜란, 지정학적 변동

1부에서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시작된 100년간의 지각변동에 주목한다. 임진왜란은 중원을 놓고 벌이는 한인과 비한인 세력의 경쟁의 일부였다. 한반도와 일본은 (중국의) 한인국가를 위협하는 일이 없었는데, 일본이 전국시대 이후 통일되며 강력해져 명나라의 정복을 시도한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임진왜란을 틈타 누르하치는 여진을 통일하게 되고, 후금은 명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며 조선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이후 명이 청에 의해 무너지자 중일 혼혈인인 정성공은 명 부흥을 위하여 대만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국 대만은 청나라에 복속되면서 1500년대 일본 전국시대에 시작된 연쇄반응이 1683년 마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반도와 타이완 섬은 유라시아 동해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중심점이자 '약한 고리'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역시 지정학적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해석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명나라를 공격하게 되었고, 그 힘의 공백으로 인해 여진이 통일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건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은 내용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항구적으로 높았던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을 통하여 극대화되었다는 점은 잘 생각해 볼 만 하다. 그냥 반도라고 해서 항상 '다리'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공격 의도가 있을 때에 다리는 다리로서 '만들어진다'. 이런 논리에서 저자는 오늘날 한반도가 '다리'의 기능을 하지 않기에 지정학적 위험도가 내려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해양과 대륙 세력이라는 말이 몇 번 언급되었고 전반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충돌로 임진왜란을 해석한다는 것뿐 본격 지정학적인 관점을 투영하였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지정학'에 대한 책으로 소개하기는 조금 멋쩍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시작되어 대만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전개를 하나의 꼬치에 잘 꿴 것은 훌륭한 일이었다.


변동 이후 동부 유라시아의 교류

2부는 임진왜란 이후 19세기까지 이어진 동부 유라시아 국제교류사라고 부를 만하다. 네덜란드를 통해 일찍이 서양의 기술과 정보를 받아들인 일본, 당시 조선과 일본의 쇄국 정책 속에서 바깥 세계의 문물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표류민들, 시베리아 정복 끝에 아무르 강에 이르러 일본과 충돌하기까지 이른 러시아 등이 소개된다.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 전파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저자는 가톨릭와 성리학의 충돌이 문명상의, 종교상의 것일뿐 아니라 가톨릭이 평등주의적 혁명사상으로서 받아들여졌음을 지적한다. "한반도 주민은 크리스트교라는 신앙체계를 자신들의 맥락에서 소화하여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유토피아를 구현하고자 했다.(중략) 이런 맥락에서 18-19세기 한반도의 가톨릭 탄압을 '신주 대 십자가'라는 식의 문명 충돌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2부의 강점은 일본에서 수학한 저자답게 다양한 일본측의 사료와 도판 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일본 쪽의 자료를 통하여 일본인들이 당시 국제 정세를 어떻게 보았는지 읽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사'/'서양사'의 구분 속에서 놓치기 쉬운 러시아의 동부 유라시아에의 작용을 빼놓지 않고 포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국사 교과서에서 '나선 정벌'을 배우기는 하나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이미 그 시절부터 해서 지금까지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에도 우리가 러시아를 단지 유럽의 국가로 받아들이며 지나치게 멀게 생각하고만 있는게 아닌가 싶다. 반면 일본은 19세기 초오호츠크해에서 러시아와 군사적 충돌을 가진 다음 큰 위협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시작한 점이 아주 놀라웠다. 


한국 근현대사, 아시아 근현대사 

3부에서는 근현대사가 숨가쁘게 펼쳐진다. 저자는 아편전쟁에 이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서구가 청나라에 침투하는 동안 일본은 시대적 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이야기한다. 임오군란은 청나라가 그동안의 '룰'을 깨고 한반도를 병합할 야욕을 드러내며 일어났고, 갑신정변은 일본의 세력확장 시도로 일어났으며, 청일전쟁에 이은 삼국간섭 이후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한반도는 중 일 러 삼국이 부딪히는 장이 된다. 이어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만주 지방에서 있었던 다양한 건국시도들과 대동아공영권의 그늘에서 역사속에 묻힌 개인들에 대한 호명이 등장한다. 상세하게 풀자면 너무 길어지니 이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언뜻 보면 3부는 1, 2부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근현대사와 사회사를 다룬 것 같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국내적 요인보다는 국가간의 세력 다툼의 차원에서 관찰했다는 점과 만주와 아시아 전역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며 인도의 독립운동까지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지정학을 주된 선율로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저자의 겸손이다. 한반도와 타이완이 지정학적 '약한 고리'(당연하게도 weak tie를 염두에 두고 말한 내용이리가 생각된다. 그라노베터 참조)라는 표현까지 써놓고서 현대사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인지 더 이상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누락된 냉전사의 지정학은 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한 내용일뿐더러 아주 흥미로울텐데 말이다. 


저자의 결론은 한반도는 '언제나'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것은 아니고, 더군다나 오늘날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충돌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듯하고, 중국이 부상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적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 위상이 확고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일본은 미국의 방침을 따르고 있기에 우리나라 입장에서 정말 경계할 쪽은 중국이지 일본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자는 '지정학적 중요도'라는 변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임진왜란 때 비로소 일본이 중국의 힘의 공백을 틈타 공격 의도를 가졌기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도가 상승했고, 19세기 말 러시아, 일본, 중국 모두에게 대륙과 해양 사이의 연결점이 필요해서 그러했다면, 저자는 지정학적 중요도를 주변 국가의 공격적인 의도나 진출의 필요성 등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로 이해하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지정학이란 좀 더 항구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리적으로 어떠한 형세를 유도하기 때문에 정치적 결과를 낳는 지역이 지정학적 중요도가 높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저자의 태도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아시아적, 혹은 보편적 시각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책에는 한반도의 주민들이 겪어 온 역사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동부 유라시아에는 유럽처럼 결속력있고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공통된 문화(ex-크리스트교)가 존재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동부 유라시아를 묶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일국의 역사가 지역 내의 동학을 고려하여 쓰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몇가지 더욱 궁금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소란 이후 한중일 사이에는 표면적으로 평화가 찾아오는데 저자는 이 안정이 삼국의 노력의 결과라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평화가 유지되었는지 궁금하다. 또 냉전기까지 논의를 확장시킨다면 우리나라는 북한의 존재로 인해 어떤 이익을 취하였던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다면 중국이 한반도를 해양 진출의 교두보로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수있지만 그렇다고 미국군이 한반도에 있는 걸 절대로 편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해, 공군과는 다른 육군 병력이 연결된 땅 위에 있다는 건 위협적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게는 여전히 일본과 특히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의 긴장이 꼭 완화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지정학을 넘어서 국제관계를 보는 시야 자체에 대한 좋은 연습이 되었던 책이었다.

Posted by nanuns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