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학2016. 3. 21. 20:00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국내도서
저자 : 장강명
출판 : 문학동네 20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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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아프다. 골치 아픈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장강명의 소설을 이 한 권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상 작품에 대해 써야할텐데, 작품이 많은 작가의 단 하나의 작품만을 가지고 논하는 건 좀 꺼려진다.

둘째, 자꾸 장강명이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간다. 스타덤이 어떤 예술 장르에나 존재하는 오늘날 이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소설 자체의 흥미로운 부분을 자꾸 작가에게 귀인시켜서 설명하려는 패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너무 작가 좋아하다보면 소설 이야기를 못한다.

셋째, 이 소설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언제 어떤 소설을 읽는다 해도 '난 이걸 다 알아'라고 느낀 적은 없지만 괜히 무언가 부족한 듯한 기분을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곤란함을 피하기 위해 우선 작품에 대해서만 오롯이 집중하여 이야기해보자. 그 뒤에 작가를 이야기해도 늦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일단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글은 책을 소개한다기보다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적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걸 보는 분이라면 책을 이미 읽었을테니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리라. <그믐>을 남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는다면 복수와 속죄의 복음서가 될 것이고, 여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는다면 인간의 기억와 정체성에 관한 우화가 될 것이다. 

큰 모멸감을 끊고 살아내는 방법은 복수를 통해 시작되었지만 '그믐'이 남자에게 들어오자 남자는 복수가 다시 복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남자의 내러티브다. 지금 와서 남자가 재구성하는 과거란 복수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지만, 아주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은 언론 플레이의 억울한 희생양, 카레를 참 좋아하던 착한 아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주머니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보통은 아주머니가 자기가 본 좋은 모습만 가지고 떼를 쓰는구나 생각하겠지만, 난 아주머니의 절규 속에서 그만 져버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애절한 사람이 이기곤 하니까 말이다. '아주머니의 관점'을 이해하게 된 남자에게 자기가 한 복수는 그저 곧 다가올 복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패턴'으로 여겨진다. 바로 '그믐'의 작용이 상호주관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그믐'이 대체 뭘까? 라는 궁금증을 다들 가졌을 것이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냥 SF적 장치라고 두고 넘어가기에는 괜찮은 해석을 찾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다. 시공간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주는 '그믐'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건 포기하더라도, 왜 하필 그믐이라는 개념에 대입했는지를 상상해보자. 시간적으로 그믐은 주기적으로 돌아오고, 공간적으로는 달이 그 자리에 있음에도 지구 그림자에 가려져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기묘한 주술적인 속성에 착안하여 '그믐'이라고 이름붙였다면, '그믐'은 가끔씩 돌아오는 혜성같기도 하며 모든 것을 빨아들여 다른 시공간 상에 불려들여놓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그믐'은 그냥 장치이고, 가장 적절한 속성을 지닌 자연현상에 빗대었고, 더 추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그믐'의 역할이 시공간을 꿰뚫어 다른 사람의 시야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는 게 유용할 것이다.

여자는 '그믐'을 모른다. 물론 들어서 알겠지만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아직 인간이 시간에 대하여 가진 유한성, 너무나 커다란 제약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그믐'을 통한 '관찰'의 특권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필연적으로 그녀에게는 기억의 굴레가 작용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고, 변주하고, 회상하고, 변조하고, ... 여자가 남자를 위해 납골당에 가는 것은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암시한다. 거기서 끝내 그녀는 남자에게 못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은 그녀 자신에게 돌아온다. 도대체 누구였니, 너는?

요컨대 <그믐>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인물들이 중요한 소설이 아닐 수 있다. 아름답지만 사실은 일부러 좀 밋밋하게 그려놓은 얼굴들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렇다면 '시공간 연속체'다. 인간이란 우연하게 생겨난 요소로서, 시공간 연속체의 작용을 자기 나름대로 관찰하는 '미물'들이다. 시공간 연속체의 입장에서 인간의 이야기는 그냥 무한히 많은 이야기의 무한히 많은 측면 중 하나를 골라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 그 덧없음이 섬뜩하리만큼 외로운 동시에 인간을 유니크하게 만든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비록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삶에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인간의 시야를 내려놓았을 때 우리는 인간의 멋짐을 배운다.


작가에 대해서는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여기에 적어볼까 했었는데, 작품에 대해 쓰고나니 작가에 대해서 내가 뭘 아나 싶다. 그러니 조용히 있자. 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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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nuns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