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회2016. 3. 17. 19:18



인구 쇼크
국내도서
저자 :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 / 이한음역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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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는 '문제'인가?

이 책의 원래 영어 제목은 <Countdown>이었다. 이걸 '인구쇼크'로 바꾸어놓은 것은 잘했다고 해야할지, 못했다고 해야할지? 출판사측에서는 마케팅을 해야하기 때문에 '인구'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하기 '시작해야 할' 문제로 인구 문제를 고르지 않을까?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라는 단어가 단숨에 튀어나올 정도로 이미 사회에 깊게 안착해 있는 오늘날 인구에 대한 책은 오히려 별로 나오진 않는 느낌이다. 인구를 키워드로 검색해보아도 참신한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하고 <인구 절벽>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인구문제의 시급성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리라는 이유만으로(아마도?) 더 이상의 논의는 포기한 걸까. 아니면 정말 별로 안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


일본에서는 얼마전 '1억총활약상'(우리 식으로 치면 장관) 자리를 만들어 저출산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현 정부가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으니(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 두고 볼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각 부처별로 나누어 보육 및 교육, 노인복지, 출산장려, 신혼 등의 이슈가 개별적으로 다루어져왔다. 


인구는 충격을 준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개념이 아니다. 한번 형성되기 시작한 인구 구조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게 일반적이고, 인구 집단 자체가 일국을 구성하기 때문에 손대기엔 너무나 방대하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인구 문제를 건드려봤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가 성공적인 가족계획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곤 하나, 그건 경제발전과 사회변동에 맞물려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지 가족계획의 단독적인 힘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다급해진다.


이 다급한 마음에 집어든 책이 바로 <인구 쇼크>. 책의 띠지에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저출산이 답이다!"라는 선정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실 이 책은 저출산과는 거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짜고짜 '저출산이 답이다'라고 축약하는 건 좀 너무한 마케팅이 아닌가 싶다.


사회냐 환경이냐

개인적인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인구 문제'에 대한 상과 이 책을 비롯한 생태학적 관점이 가지고 있는 상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인구 증가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누구나 줄줄 읊을 수 있지만, 우리가 겪어온, 겪고 있는, 겪을 인구 문제는 다분히 '사회적'이다. 좁은 국토에 무지막대한 사람들이 몰려있지만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대만원"이라는 구호 이외에 우리 나라의 자연 조건이 현재의 인구를 진실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없다. 당장 식량이나 식수가 부족해서 죽지는 않잖은가. 반면 세계적으로 보면 인구 문제는 '환경적'이다. 인간이 환경과 맺는 연관, 즉 거대한 지구 생태 속에서 인구 문제가 정의된다. 인구야 말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지점인데, 우리가 인구 문제를 주로 '가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관점 차이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생태학적 관점에 입각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네 가지이다. 이 네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는 2년간의 여정이 한 권의 훌륭한 르포가 되었고 절대로 명시적인 답을 알려주지 않고 '보여준다'.


1. 그들의 땅에 정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중략) 범위를 넓혀서 과연 우리 행성은 얼마나 많은 인구를 지탱할 수 있을까?


2. 인간의 생존을 보증할 만큼 생태계가 튼튼해지도록 하기 위해 인구가 100억명까지 늘어나지 않게 막아야 한다면, 혹은 이미 있는 70억 명보다 더 줄여야 한다면 세계의 모든 문화, 종교, 국적, 부족, 정치 체제에 속한 이들에게 인구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라고 설득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비폭력적 방법이 과연 있을까? (후략)


3. 인류가 생존하려면 얼마나 많은 생태계가 필요할까? (중략) 아니, 우리가 인구를 엄청나게 불려 가면서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구에서 내몰고 있는 종의 수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우리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종은 무엇일까?


4. 지구의 지속 가능한 인구가 앞으로 불어날 100억 명보다 적다는 사실이, 아니 우리가 이미 도달한 70억 명보다 적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감소한 인구, 그래서 안정화된 인구를 위한 경제를 우리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즉 지속적인 성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번영할 수 있는 경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니제르 사헬지대, 영국, 우간다, 필리핀, 이탈리아, 멕시코, 이란, 인도 중국, 일본 등 전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다양한 노력이 다큐를 보듯 펼쳐진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함부로 평가하려 들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흥겨운 말투로 각양각색의 모습을 중계해준다.


가족계획와 저출산

 600여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 없으니 저자 스스로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란에 대한 부분만 소개해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며 아랍어를 사용하지도 않는 나라로,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언어 및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현대 정치의 흥미로운 동학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이란에서는 60년대, 70년대에 출산율이 아주 높아서 가족계획을 시도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고서 이라크와의 긴 전쟁이 일어나면서(우리가 잘 모르지만 길고도 끔찍한 전쟁이었다) '2000만 군대'를 조직하자는 주장으로 엄청난 인구 증가율을 '낳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너무 많자, 바로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되었고 믿기지 않는 속도로 출산율이 떨어졌고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 (실제로 현재 이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60%를 넘고 있으며 높은 공무원 중에도 여성들이 꽤 있다) 2012년에는 이란의 출산율이 1.7명이라니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현재 이란에는 여전히 예전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환경을 담보로 삼아 그들을 위한 전기를 공급해야 하고, 20년 정도가 지난다면 한국과 일본이 겪고 있듯이 고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에 젊은 세대가 짓눌릴 것이다.


이란의 케이스는 어떻게 출산율이 급등하고 급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란의 독특한 신정 체제와 맞물려 여러 가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낳는다. 어찌 보면 한국과도 대단히 비슷하다. 전쟁이 끝나고나서의 베이비붐, 그 이후 이어진 대대적인 가족계획과  출산율의 수축.


저출산은 현 상황에 대한 '응답'일까?

저자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구를 줄이자'이다. 이 생태계가 현재와 앞으로 불어날 인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 없는 번영'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무조건적인 성장 대신에 '안정 상태'의 경제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지구라는 우주선[닫힌 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미래 세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인류는 이미 포화상태라고? 어쩌면 바로 이게 핵심이 있다.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저출산 사회'가 안정 상태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생활 여건이 향상되면서 인구가 급증했지만 더 이상 많은 인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부지불식간에 알게 된 우리가 인구를 줄이기 위한 방책을 시작한 게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저출산은 장기적으로 축복일 수 있다. 대신 향후 100년간 막대한 노년층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은 사라지지 않기에 저출산이 아닌 노년에 대한 집중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곳들은 그저 우리나라의 40년 전 모습을 반복하고 있을뿐이라면, 결국 그곳에서도 적정 인구로 수렴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인간의 경제가 아무리 자연을 정복해왔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원재료를 비롯한 모든 것은 자연에서 오기에 경제가 버틸 수 없는 날이 온다면 자연도 버틸 수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때 인구가 줄어든다면 그건 단지 사회적 작용이 아닌 자연의 작용이다. 즉 인구압을 우리 손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자연이 해소해주리라는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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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nunsaram